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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Korea

명동 성당 산책겸 다녀왔어요

아카홀릭(a.k.aholic) 2022. 4. 2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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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성당 산책겸 다녀왔어요

 

오늘은 얼마전 친구와 함께 다녀왔던

명동 성당 산책에 대해서

가볍게 포스팅 하도록 하겠다.

 

이날은 촬영일정때문에

명동에 가야했었고

혼자 가려고 하다가

친구에게 시간되면 같이 가자고 제안.

마침 친구도 시간이 되서

함께 명동에 간 김에

산책겸 명동 성당도

가볍게 한바퀴 돌았는데

그러면서 기록해보는 이야기이다.ㅋㅋ

 

그럼 주인공 소개도 끝났으니

얼른 본론으로 넘어가가 이야기하자.

본론으로 고!고!

 

http://kko.to/6PpexRJp_

 

천주교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서울 중구 명동길 74

map.kakao.com

 

먼저,

명동 성당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위에 첨부하니

그 위치를 참고하면 되겠다.

 

[위치]

도로명 주소

서울 중구 명동길 74

지번 주소

서울 중구 명동2가 1-1

 

전철역으로 명동역이나 을지로입구역에서

쫄쫄쫄 걸어서도 방문할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명동의 가장 메인이 되는

시그니처 장소이기도 하겠다.

 

외국인 친구들이나

명동에 마실나왔다면

가볍게 명동 성당에 찾아서

둘러보는 것도 돈드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코스 구성일 듯.ㅋㅋ

 

 

그렇제 지도에 표시된 곳에 도착하면

위 사진처럼 계단 너머 성당건물과

앞에 안내판이 있는 명동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그럼 성당 앞에 도착했으니

기본적인 정보도 정리해서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다.

 

[연락처]

02-774-1784

 

[기타사항]

주차,

남/녀 화장실 구분

 

뭐 특별할 것 없이

이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고

인터넷에서 기본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명동성당의 내용도 담아본다.

 

 

[인터넷 설명]

 

명동성당 건립은

1883년 무렵

김 가밀로의 명의로 종현 일대의 대지를

구입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교구장 블랑,Blanc 주교는

우선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서당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이후 풍수지리설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토지 분쟁이 있었으나,

1890년 이를 마무리지었다고~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Mutel) 주교는

1892년 8월 5일 기공식을 갖고

한국 교회를 위해 일했던

주교와 선교사, 은인들의 명단을

머릿돌 밑에 묻고

머릿돌을 축성하여 고정시켰다고 한다.

 

성당의 설계와 공사의 감독은

코스트(Eugene Coste) 신부가 맡아 진행했으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선종함에 따라

프와넬(Poisnel) 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성당 건축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1898년 5월 2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갖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하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

사적 제258호로 기록되어 있다.

 

성당의 건축 과정에서

많은 신자가 무료로 노력 봉사를 하였으며,

성당의 건축에 쓰인 벽돌은

청나라의 벽돌공을 데려다가 만들었다.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하여

성당 명칭은 종현성당에서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휴~이정도로 정리해보면서

명동성단 가장 앞에 보였던

메인건물 사진을 스윽 담았고~

 

 

여기에 하나 더.

위 내용들은 내가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고

지역 명소에 방문하면서

나름 공부를 해보고 배워보자,

하나씩 알아가보자라는 의도로

이렇게 정리해본 것이다.

그러면서,

음 그럼 명동성당 홈페이지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간단하게 접속해서 알아봤더니

좀 더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일자나 기간의 중요도보다

이야기 흐름이 더 담고 있는 것 같아

함께 참고할 수 있도록

따로 가져와서 정리해봤다.

 

[홈페이지 내용]

 

천주교서울대교구주교좌명동대성당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심장이라고 표현한다.

이곳은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자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라고 한다.

2천 년 교회사 안에서

유례 없이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인 스스로의 손으로 창립됐다.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1784년 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한 뒤

귀국한 때로부터 치지만

그보다 4년이 앞선 1780년 1월,

천진암에서는 권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회가 열렸고

여기에서 당시의 저명한 소장 학자들은

천주학을 접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 해 가을,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에 입교하고

자신의 집에서 교회 예절 거행과

교리 강좌를 열게 된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복판에

겨레 구원 성업의 터전을 닦았고

바로 이곳에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산 역사인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승훈, 정약전 3형제, 권일신 형제 등이

이벽을 지도자로 삼아 종교 집회를 가짐으로써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됐으나

이 신앙 공동체는 이듬해

형조 금리(刑曹禁吏)에게 발각돼

김범우가 경상도 단장으로 유배되면서 해체,

 

그 후 1882년

명동은 한미수호 조약의 체결로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을 예견한

제7대 교구장 블랑 주교에 의해

성당 터로 매입되었다고 한다.

 

블랑 주교는 이 곳에다

우선 종현 서당을 설립, 운영하면서

예비 신학생을 양성하는 한편

성당 건립을 추진해

한불 수호 통상 조약(1886년)을 체결했던

이듬해 1887년 5월,

대지를 마저 구입하면서

그 해 겨울부터 언덕을 깎아 내는

정지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 신자들은 손수 팔을 걷어 붙이고

정지 작업에 나섰는데

블랑 주교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들의 신앙적 열성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남자 교우들은

사흘씩 무보수로 일하러 왔는데

그것도 12월과 1월,

큰 추위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이 일에 놀랄 만한 열성을 쏟았고

그들은 신앙과 만족감에서

추위로 언 손을 녹일 정도로

참아 내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의 열성으로 시작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의 정지 작업은

풍수 지리설을 내세운 정부와의

부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4년이 지난 1892년 5월 8일에 가서야

기공식을 갖었다고 한다.

 

그 사이 초대 주임 블랑 주교가

1890년 선종하고

두세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성당 설계와 공사의 지휘 감독은

코스트 신부가 맡았는데

그는 약현(현 중림동) 성당과

용산 신학교의 설계 감독도 맡았다고 한다.

 

코스트 신부가 1896년 선종하고

그 뒤를 이은 프와넬 신부에 이르러서야

성당 건축을 마무리 짓고

드디어 1898년 5월 29일,

성신 강림 대축일에

조선 교구장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역사적인 축성식을 가졌다고 한다.

 

기공 후 무려 12년만에 완공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준공된 후 그 지하 묘역에는

기해병인박해 당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해 왔다고..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첫 입국해

기해년 1839년 9월 12일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는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의 형을 받은 후

한강변 모래밭에 매장됐었고,

순교한지 약 20일 후

칠팔 명의 신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세 분의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서강 대학교가 소재한

노고산에 4년간 매장했다고 한다.

그 후 유해는 1843년에

삼성산으로 이장됐다가

1901년에 이곳으로 모셔졌다고 한다.

 

오메 내용도 길고

등장인물도 많고

시기와 히스토리가 많았는데

말그대로 히스토리인 것이라

누구를 빼고 누구를 넣고

그렇게 가감할 수 없기에

전체를 정리해서 담았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이나

관심있는 분들은 뭐랄까....

장소의 사진, 분위기뿐만 아니라

이 장소의 의미도 이렇게 간단히라도 이해하고

그 느낌을 함께 받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국내여행 콘텐츠를 만들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ㅋㅋ

 

여튼 그렇게 알아보면서

한번더 명동성단 고딕양식 건축.

사진 몇장으로 메인을 더 구경하고~

 

 

이제부터는 가볍게 한 바퀴 돌면서

전체적인 장소를 구경해보자고.ㅋㅋ

 

먼저 메인 건물 앞쪽에서.

참고로 나는 무교이면서 무지해서

이곳의 건물이나 명칭을 모른다.

그냥 간단하게 참고식으로 설명하겠다.

여튼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위와 같은 건물이 있더라.

 

사제관이라고 한다.

요 앞에 의자가 있는데

여기 앉아서 잠깐 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제관 옆쪽으로는

명동 성당 별관건물이 있더라.

그 아래쪽으로는 주차장길도 있고~

 

물론 나는 겉에서 스윽보고

참고용 사진 찰칵하고 패스했지.ㅋㅋ

 

 

그리고 명동 성당 정면에서

이번에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영안실이 위치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분들을 모신 곳인 것 같다.

 

모르면 그냥 지나가는 건물이고

알고 본다면 이해되는 부분.

이게 여행의 재미이지 :)

 

 

그리고 메인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한바퀴 돌려고

스윽 이동하니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런 처리를 봤네.ㅋㅋ

 

이거 정확하게 용어는 몰라도

이렇게 해두면

해중? 병충해?에 예방하고

뭐 그런거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ㅋㅋ

옛날 추억 생각나서 한 컷.ㅋㅋ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위 사진처럼 커다란 책모양으로

명동 성당의 설명이 적혀있었다.

 

나는 앞서 알아봤으니

(독자님들과 함께)

관심있는 분들은 확대해서 읽어보시길

기본적으로 참고만 하고 패스.

 

 

그렇게 오른쪽으로 돌아서

명동 성당 뒤쪽.

안쪽에는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있었겠는데

일반적인 방문자인 나는

(외부인이라고 해야겠지?)

안에 들어가보지 않고

근처만 스윽 둘러봤다.

 

이런 건물 양식.

사진찍기도 좋고

정취를 즐기기도 좋다.

동양적인 느낌과 서양적인 느낌.

모든 감성을 좋아하다 보니

눈에 담기 좋더라고.ㅋㅋㅋ

 

특히나 저런 창문 모형.

좋더라.ㅋㅋㅋ

 

 

그리고 뒤쪽에 자리잡고 있던 마리아상.

(마리아상 맞지?)

방문당시 다른 분들이 방문하면서

기도드리고 하길래 피해될까봐

후딱 참고용 사진만 담고 빠졌다.

피해드릴 순 없지.

 

그리고 잠깐 구경하고

개인 습작 몇장 찍어보고

다시 반대편으로 나와서

영안실 지나 복귀했다.ㅋㅋ

 

뭐 크게 대단하게 이슈를 잡기보단

명동에 방문하면서 시그니처 사진.

그리고 의미있는 장소.

고즈넉한 산택.

골골루 챙길 수 있는 것이기에

가볍게 추천해보면서

나는 이번 콘텐츠 포스팅은 마무리!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이야기로

부지런히 찾아오도록 하겠다.

나중에 혜윰님과 다시와야지~

그땐 출사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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