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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Korea

덕수궁 야행 야간개장 야경 즐기기 고즈넉한 고궁 투어

아카홀릭(a.k.aholic) 2024. 6. 17.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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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야행 야간개장 야경 즐기기

고즈넉한 고궁 투어

 

오늘은 더운 여름이 시작되면서

낮에는 힘들지만 밤에는 기분 좋은

덕수궁 야경에 대해서 포스팅하겠다.

서울 도심, 야경을 즐기는 고궁 여행!

그럼 주인공 소개도 했으니 얼른 본론으로 고!고!

https://kko.to/kLJha6zjAH

 

덕수궁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map.kakao.com

 

먼저,

덕수궁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위에 첨부하니

그 위치를 참고하면 된다.

 

[위치]

도로명 주소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지번 주소

서울 중구 정동 5-1 덕수궁

 

광화문, 서울 시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교통으로도 방문하기 좋다.

이쪽은 항상 유동인구도 많고 차량도 많으니

대중교통으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지도에 표시된 곳에 도착하면

위 사진처럼 대한문이 있어

덕수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깨알정보로 여기가 또,

3.1운동 만세 시위지.

 

그럼 우선 덕수궁 앞에 도착했으니

이곳의 기본정보들도 정리해서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다.

 

덕수궁

德壽宮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이후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으로 바뀌었고 그게 현재까지 :)

 

1897년(광무 1),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부터

중화전, 정관헌, 돈덕전,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준명전, 흠문각,

함녕전, 석조전 등 많은 건물들이

지속적으로 세웠졌다고 한다.

이곳은 고종의 재위 말년의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되었던 장소로,

궁내에 서양식 건물이 여럿 지어진 것이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1963년 1월 18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아까 언급한 대한문은

아래도 종종 설명이 있겠지만

1904년 화재가 있은 뒤,

원래 덕수궁의 정문이었던

정던의 정남쪽, 인화문에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대한문으로 명칭도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그러니 이 곳은 새롭게 정비된 정문이다.

(이것도 깨알 상식이겠다.ㅋㅋ)

그래서 궁을 들어가서 정전으로 향하는 길이

왠지 서쪽으로 걸억들어가는 느낌이다.ㅎㅎ

 

이정도로 덕수궁 입구 대한문과

덕수궁의 기본적인 내용도 알아봤고

아래 고궁 투어를 하면서

또 공유할 내용들을 공유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한창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덕수궁 입구에서 밤의 석조전에 대해서

알리고 홍보를 하고 있더라고.

요약하면

예매한 인원들만 모집해서

석조전에 들어가 다과도 먹고 음악도 듣는

석조전 즐기기 프로그램인데,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도 있다.

 

이후 설명이 있겠는데

석조전은 과거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의 국격을 떨어트리고

국고, 세금을 소진할 목적으로

파티, 연회 등을 열었던 곳이다.

그걸 프로그램으로 즐긴다?

그 시대의 참담한 모습을 가지도 돈을 번다?

이건 고찰해볼 필요가있다.

 

이런식으로 비판의 시선도 있다.

나도 직접 취재를 하면서 알게된 내용이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되더라고.

이당시 시대는 사면초가의

아픔의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석조전 프로그램은

인기가 매우 높지..ㅎㅎ

여튼 이런 프로그램도 참고.

 

 

그리고 입구 옆쪽 매표소에서

덕수궁 입장 티켓 발권하면서

기본적인 정보도 정리 :)

 

[영업시간]

화~일

09:00 - 21:00

 

정기휴무

매주 월요일

 

*휴무일이 공휴일 경우 익일 휴무

*입장마감은 1시간전

 

[연락처]

02-771-9951

 

[입장료]

대인(만25세~만64세) 1,000원

만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만65세 이상 어르신 무료

외국인(만7세~64세) 1,000원

장애인, 유공자 무료

한복을 착용한 자 무료

 

이 정도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고

더 자세한 문의사항은

위 연락처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입장요금이나 단체 할인 등

옵션이 많은데 위 이미지 참고하면 될 듯.

 

 

그렇게 입장권 발권하고 덕수궁 입장.

입장해서 바로 대한문 옆으로

물품보관함도 있으니

짐이 있는 분들은 여기서 짐을 맡길 수 있다.

선착순이라 자리가 있으면 러키!

 

 

그리고 우리는 덕수궁 안쪽으로 걸어와서

광명문 앞에서 잠시 대기.

여기서 일행을 만났다.

일행이라고?

이번 덕수궁 야경을 즐기면서

좀 더 깊이 있는 투어를 하고자

사설 프로그램인 덕수궁 야행을 신청.

그 가이드 팀과 함께 다녀온 것이다.

 

 

이런 사설 프로그램이 엄청 많은데

덕수궁 야행 야경을 즐기면서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는 투어이다.

내가 포스팅으로

덕수궁과 야경을 공유하지만

꼭 이 사설프로그램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너무 재밌게 다녀왔지만)

 

나는 역사충이라

덕수궁 취재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탐구하기위해 신청했고,

꼭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독자분들은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냥 내 포스팅을 켜놓고

거닐면서 함께 보면 된다.

그럼 기본적으로 전반적인 내용은

독자분들도 공유받을 수 있다.

이것의 내 여행 채널의 매력 :)

 

여담으로

덕수궁 야행 사설 프로그램은

가이드님과 연결된 무선 송,수신기로

이어폰을 꽂고 들으면서 투어한다.

이것도 대만 고궁박물관이나

한국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느낌.

(그건 기록된 음성이겠지만)

일단 그렇게 투어한다고 참고.

 

 

그렇게 일행과 모여서

덕수궁 광명문에서투어

덕수궁 야행을 시작했다.

덕수궁은 하나 같이 의미있는 건물들이라

아래 좀 스압이 될 수 있는데

그래도 기록할만한 요소들은

간단히라도 기록하면서 넘어가보자.

우선 광명문.

 

광명문

光明門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기거하던

침전(寢殿)인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함녕전은 1897년(고종 34) 창건되었는데,

정문역할인 광명문도

이때 함께 건립되었는지는

기록이 분명하지 않아 알 수 없다고 한다.

 

1904년(고종 41)

함녕전에서 발생한 화재로

많은 전각이 불에 타 사라졌고

1906년 중화전을 비롯한 전각들 대부분이

중건되었는데 광명문도 이때 중건되었다.

일제는 1933년,

궁궐을 훼손하고 궁역을 축소하여

조선의 품위를 깎아내리는 정책에 따라

덕수궁 중심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을 철거하고

중앙공원으로 개조했다.

이로 인해 광명문 좌우에 있던 행각이 철거되었고,

광명문도 1938년 궁의 남서측 구석진 자리인

석조전 서관 남쪽으로

문짝과 벽체가 모두 제거된 채 이건되었다.

그리고 본래의 기능과 다르게

석조전의 부수적 공간으로서

창경궁 자격루(국보), 흥천사명 동종(보물) 등을

전시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던 과거가 있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18년,

문화재청이 광명문 제자리 찾기 사업을 추진,

원 위치인 함녕전 남행각 앞쪽으로 이건,

2019년 3월 준공식을 가졌다.

이로써 약 80년 만에

광명문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덕수궁 화재 후 중건한 1906년의 모습을 기준으로

완전 해체 후 이건하고,

부재 일부를 교체하여 수리하였다고 한다.

 

석조전 앞까지 옮겨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문이고

고종의 침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무슨 악세서리 처럼 이용한 부분에

약간 스팀을 받게 되더라고.

 

 

그렇게 광명문을 지나서

기을 따라 쭈욱.

서쪽 방향으로 오게되면

오래지나지 않아 중화문이 있고

그 뒤로 중화전이 위치한다.

 

중화전 및 중화문

中和殿, 中和門

 

덕수궁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正殿)으로,

임금이 신하들로부터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진행하던 곳이다.

전각의 명칭인 '중화(中和)'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유교 경전 《중용(中庸)》에서 유래되었고,

1985년 1월 8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1897년 환궁하면서

경운궁(현 덕수궁)을 법궁(法宮)으로 삼고,

경운궁이 궁궐로서의 격을 갖추도록

수리를 지시하였다고 한다.

원래 덕수궁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1902년에 새로운 정전인

중화전을 새로 건립한 것이다.

건립 당시에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과 같이

중층으로 지어졌지만1904년 화재로 소실,

1906년에 단층으로 다시 지어진 것이다.

 

 

중화전 옆쪽에 앉아서

덕수궁 야행 이야기도 들었는데

조선시대 말,

대한제국 시대의 이야기,

헤이그특사나 아관파천.

그리고 중화전의 모습 등

기록되어있는 자료들도 위 사진처럼

가이드님이 챙겨서 보여주셔서

참고하는데 도움이 되더라고.

 

 

그리고 특징.

위에 보이는 비석? 석조는 답도라고 하는데

여기에 멋진 용 두마리 장식이 있다.

보통 조선 궁궐의 정전에는

봉황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여긴 두마리에 용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고종 황제,

황제를 표현하는 용으로 장식한 것이라고 한다.

이 모습은 정전, 중화전 내부에도

천장에 있으니 함께 체크해서 관람하면 포인트.

 

 

중화전 안쪽에는

위 사진처럼 임금의 자리와

그 뒤에 일월오봉도.

언제나 봐도 화려하나 검소하고

아늑하지만 굳건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분위기.

 

 

그리고 천장으로 시선을 올려서

황제를 표현한다는 용장식.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대한제국으로,

왕에서 황제로 승격되면서

그 의미가 건축물에도 담겨있으니

관람시 느껴보는 것이 의미있다.

나도 중화전 앞에 사람이 많아서 붐비지만

살짝 용기내서 얼른 가서 담고 빠졌다.ㅋㅋ

 

 

그렇게 중화전을 돌아서 뒤편.

잠시 적당한 자리에 착석하고

가이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라본

덕수궁 즉조당과 준명당이다.

내가 바라보는 사진 시야로

왼쪽이 준명당, 오른쪽이 즉조당.

 

준명당

浚眀堂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부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하여

많은 건물을 중건하였던 1897년에 새로 지었다.

내전(內殿)의 하나로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곳인데,

현재의 건물은 1904년 불이 나 타 버린 뒤에

즉조당(卽阼堂)과 함께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과거, 종래 화재가 난 뒤

경효전(景孝殿)과 흠문각(欽文閣)에

모셔져 있던 고종과 순종의 어진(御眞)을

준명전(濬明殿)과 그 서행각(西行閣)에

옮겼다는 기록으로 보아

준명당은 불타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해왔지만,

이는 준명전과 준명당을

같은 건물로 착각한 데서 온 잘못된 판단이며,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에

현재의 준명당은 1904년에 중건된 것임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즉조당

卽阼堂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갔던 선조가

난이 수습된 뒤에 돌아와

시어소(時御所)로 사용하였던 건물로서,

1623년(인조 즉위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즉위한 뒤부터 즉조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慶雲宮, 현 덕수궁)으로 옮겨온 뒤

정전(正殿)으로 사용되었고,

한때 태극전(太極殿)·중화전(中和殿)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고 한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이 건립된 뒤부터는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904년 불이 나 타 버린 것을

같은해 3월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고종이 상왕이 된 뒤 거처하던 궁궐로서

궁명(宮名)을 덕수궁으로 바꾼 뒤인

1907년부터 1911년까지는

후비인 엄비(嚴妃)가 이곳에 거처하였다.

 

 

현관 앞 처마 밑에는 ‘즉조당(卽阼堂)’,

대청 앞 기둥 위쪽에는 ‘경운궁(慶運宮)’이라고

쓴 현판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아까도 언급했는데 경운궁은 덕수궁의 옛이름.

그리고 시선을 살짝 오른쪽으로 돌려

저기 2층 구조로 보이는 건물이

덕수궁 석어당이다.

 

석어당

昔御堂

 

1층은 정면 8칸, 측면 3칸,

2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의 굴도리집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의주까지 피난갔던 선조가

한양에 돌아와 임시로 정치를 행하였던 곳으로,

1904년의 화재로 원래 건물은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904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화재로 인해서

덕수궁의 대부분의 건물이 불 탔고

1904년에 다시 지어지면서

점차 현재의 모습을 갖춘거 같더라고.

 

이쯤에 서서히 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와서

본격적인 덕수궁 야행 느낌이더라.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고

다시 여기로 돌아와서 야경도 즐겼으니

그 느낌은 아래에서 참고 :)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준명당 옆으로 이동.

그럼 덕수궁 석조전이 위치한다.

포스팅 초입에 언급했던 거기.ㅎㅎ

 

석조전

石造殿

 

건물의 명칭인 석조전은78

石: 돌 석, 造: 지을 조, 殿: 대궐 전,

돌로 지어진 궁궐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대한제국 왕실의

황궁으로 쓰여질 예정이었으나,

석조전이 완공되기 3개월 전인

1910년 8월 29일에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1933년

일제는 덕수궁 일대를 공원화 하면서

석조전을 일본 근대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사용하였고,

1938년

석조전의 서남쪽에

오늘날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왕가 미술관(신관)을 추가로 건립하였다.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으며,

이후,

UN 한국임시위원회의 사무실과

회의실 등으로 활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주로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는데,

1955년 ~ 1972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1973년 ~198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1987년 ~ 2005년까지는 궁중유물전시관,

2014년부터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했다.

(현재 유물전시관과 대한제국역사관)

 

역시나 밤의 석조전 프로그램 설명과

입구에는 대한제국 시절,

신식군복을 입은 직원분이

사진도 찍어주고 안내도 해주시는데

아까 비판적인 의견을 알고보니

이게 막 또 사진을 함께 찍고싶진 않더라.

직원분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 슬픈 역사의 사실을

더 옳은 방향성으로 가지지 못한

우리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조금은 마음이 무거웠어.

그리고 석조건물로 이어진 시선으로 보면

끝자락에 석조전시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여기도 이어진 석조전이고

아까 말했던 광명문이 여기 앞에 있다가

다시 제자리로 찾아간 것이다.

그 설명을 하고 싶어서 사진 한 장.

가이드님께서 설명해주신 내용으로는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석조전 두 건물을 이어주는 저쪽 라인에

(위 사진으로 담은 곳)

러시아 대사관이 있었고

지금은 길건너 정동제일교회쪽에 있다고 한다.

 

그렇게 잠시 관람하고

저 방향으로 길이 나있는데

길 따라서 살짝 언덕길 올라갔다.

그럼 위사진처럼

덕수궁관리소가 있는

덕수궁 돈덕전에 도착한다.

 

돈덕전

惇德殿

 

석조전 뒤편에 있는 서양식 2층 건물로,

외국 공사를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건물의 명칭인 ‘돈덕(惇德)’은

오경(五經)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글귀,

"惇德允元(돈덕윤원)"

'덕이 있는 이를 도탑게 하고,

어진 이를 믿는다'에서 인용된 것이라고~

 

대한제국의 2대 황제 순종은

1907년 7월 돈덕전에서 즉위식을 했고,

1907년 11월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후,

고종이 외부인을 만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로는 덕수궁과 함께 방치...

이후 정확한 훼철 기록이 남아있진 않지만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철거된 것으로 추정되고,

2015년부터

돈덕전 복원·정비사업이 시작되어

2023년 5월 덕수궁 돈덕전 복원이 완료,

2023년 9월 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그러니 현재 방문해서

관람해보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포인트로

붉은 벽돌 건물에

위 사진에 보이는 청색의 꽃 문양.

이 꽃은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다.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맞아

근대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함이

이런 디테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다시 내려와서

즉조당, 준명당 위치에서 바라본

덕수궁 중화전 뒷 모습이다.

이제 본격 야경즐기기도 함께 할 수 있겠다.ㅋㅋ

이제 더위가 좀 가셔서 살겠더라고~

 

 

그렇게 내려와서 반대길로 살짝 올라가면

우리가 많이 들었던 덕수궁 정관헌이 위치한다.

 

정관헌

靜觀軒

 

덕수궁 북동쪽에 있는 서양식 건축물로,

靜: 고요할 정, 觀: 볼 관,

'고요하게 바라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과 근거는 없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고종·순종 등의 영정과

어진을 모시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933년,

일제는 덕수궁을 공원화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는데,

이때 정관헌은 관람객들을 위한

카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도

정관헌은 덕수궁의 휴게실로 사용되어,

각종 행사 장소로 활용되었다.

 

위 내용들을 참고해보면

과거에 내가 배웠던 조선말,

대한제국의 끝에서

고종을 평가하는 방향에서

현재는 더 깊이있는 해석으로 보여진다.

빠르지 못해도 천천히

제 자리를 잡는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또 디테일 포인트로

정관헌 난간 문양을 보면

가운데 소나무와 사슴이 보이고

모서리 꼭지점 쪽에는 박쥐가 있네?

엥?? 궁에 박쥐가??

 

장수를 상징하는 사슴과 소나무,

황제를 상징하는 용,

박쥐는 복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게 생소할 수 있는데

蝠 박쥐 복/ 福 복 복

음이 같은 한자를 가지기에

이렇게 표현된 것 같더라고.

와 이것도 깨알 상식이라

탐구하는게 너무 재미있었다.ㅎㅎ

가이드 선생님 설명 :)

여기서도 황실취미회라고 해서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던 거 같은데

과거에 고종이 여기서 커피,

가베를 즐겼다는 내용도

다시 고찰해볼 수 있는 부분이겠다.

 

그리고 계단을 조심히 내려와서

저 넘어 시야로 보이는

덕홍전이라 함녕전으로 이동.

함녕전이라고 하면

아까 광명문 앞에서 언급한

고종 황제의 침전이다.

함녕전

咸寧殿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침전(寢殿)으로,

고종이 일상을 보내던 공간이다.

咸: 다 함, 寧: 평안할 녕,

《주역(周易)》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모두가 평안하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앞에서 한번 설명했는데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경운궁이 궁궐로서의 격을 갖추도록

수리를 지시하였는데,

1897년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이 건립되었지만,

7년 뒤인1904년,

함녕전 아궁이에서 시작된 화재가

경운궁 전체로 퍼지면서

함녕전을 포함한 경운궁에 있는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 해 12월에 복원되었고,

1919년 고종이 함녕전에서 사망한 이후에는

이곳을 빈전과 혼전으로 사용하였으며,

'효덕전(孝德殿)'이라 불렀다고 한다.

1907년 고종이 왕위를 물려주고

13년 동안 함녕전에 거쳐했고 승하한 곳이라

그 마지막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혼전 (魂殿)

임금이나 왕비의 국장(國葬) 뒤

삼 년 동안 신위(神位)를 모시던 전각.

 

*빈전 (殯殿)

국상(國喪)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

 

여기서 인상적인 포인트가

역시나 화재로 소실되었던 사건이다.

덕수궁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그 화재의 발원이 함녕전 아래에 있는

아궁이 같은 곳에서 시작이라고 한다.

저 위 사진 사람들 모여서 보는 곳.

가이드님이 설명해주셔서

다들 한 번씩 보고 와서 바글바글.ㅎㅎ

여기서 불이나서 번졌다.

그 번지는 것도 옆건물,

또 그 옆건물로 엄청 크게...

건물과 건물사이의 거리도 먼데

또 아궁이 근처는 다 돌로 되어있고

이게 함녕전 위에까지 번진다...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얼마나 건조하고 얼마나 뜨거워야하며

얼마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야

불씨가 옮겨가서 붙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후에 일본이

단순 화재로 수사를 종결했다는 점.

수사도 뜨뜨미지근하게 했다는 점도 있다니

이건 뭐 그냥 고종황제 덮어버리기라고 본다.

이렇게 복원해서 간직하는 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까지 덕수궁 야행으로

가이드님과 함게 하니

시간이 쏜살같이 달아나더라고..ㅋㅋㅋ

오후 8시10분쯤 끝나고

9시에 덕수궁 폐관하니

나머지 시간을 고즈넉한 고궁 투어.

얼른 또 즐겨봐야지.

조명이 들어오면 그 멋이 또 다르니까~

다시 걸어와서 석어당.

짙은 색의 건물과 조명.

그리고 2층 구조가 인상적이었고

증화전 뒷 모습.

조명의 멋으로 그 색감이 확 살아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단단히 자리했던,

그 조상님들의 의지를 닮은 것 같다.

여기서 우리 커플 사진도 담았지 :)

그리고 여기서 사진을 담으면서

준명당과 즉조당도 함께 봤는데

여기 구조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그런가

또 다른 감성이라 예쁘더라고~

실루엣만 나오게해서 촬영해도 좋은 스폿.

 

그리고 취재, 촬영하면서

거의 덕수궁 폐관 시간이 되었고

중화문으로 나오면서 중화전 모습.

사람이 한 명도 없고

고즈넉한 모습을 그대로 담을 수 있어서

막판까지 즐기는 것이 꿀팁이겠다.

 

 

그렇게 중화문을 나와

광명문을 지나면서

덕수궁 야행의 끝이었던 함녕전.

이렇게 이날 고궁 야경 즐기기 끝.

 

시간과 돈을 들여서

유료 덕수궁 야행을 즐기는 것이

너무 즐겁고 좋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위 내용과 함께 거닐면서

읽이보면서 다니면 재미있을 것이다.

여행도 가성비도 챙기고

가심비도 챙기고 너무 좋잖아 :)

그러기 위해 내 채널이 있는 것이고.

나는 그걸 공유하는 것이고.ㅎㅎㅎ

여튼 너무 만족하는 고궁투어!

 

그럼 나는 이렇게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이야기로

부지런히 찾아오도록 하겠다.

여행은 언제나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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